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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 진주 남강 유등축제장 풍경(2014.10.11)♧

반 석 2014. 11. 28. 00:05
♧[1] 2014 진주 남강 유등축제장 풍경(2014.10.11. 토)♧ 2014년 10월 1일 ~ 10월 12일까지 진주 남강일원에서 펼쳐진 "2014 진주남강 유등축제"의 주간 및 야간풍경을 촬영한 사진 중 첫번째로 올리는 주간 풍경입니다.

 

▽진주성 서문으로 입장하여 첫번째 촬영한 사진입니다.

 

◐ 서장대(西將臺)는 ? ◑ 서장대는 진주성 서문의 지위대장으로서 "여지도서"에 회룡루(回龍樓)로 적고 있는데 규모는 작았지만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서장대는 허물어진 것을 1934년 독지가 서상필(徐相弼)씨가 중건한 것으로 목조 기와 집입니다.

 

▽서장대에서 내려다본 남강 천수교 방향 풍경

 

▽촉석루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촬영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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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유등의 유래는 ? ◑ 진주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우는 유등놀이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기원하고 있다. 1592년 10월 김시민 장군이 3,8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수성군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여명의 왜군을 크게 몰리친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 진주성에서는 성 밖의 의병(義兵) 등 지원군과 연락하기 위한 군사신호로 풍둥(風燈)을 올리기도 했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전술로 쓰였으며, 멀리 두고 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1593년 6월에 진주성은 10만 왜군에 점령 당했다. 현재까지 진주 사람들은 이 일을 계사순의(癸巳殉義)로 기리고 있다. 계사순의 이후로는 당시 순결한 7만여 민관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유등을 띄웠는데 이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유등축제로 자리잡은 것이다. [2014 진주남강 유등축제 팜프렛에서 옮겨옴]

 

▽진주성에서 바라본 진주교 방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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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에서 바라본 천수교방향 풍경

 

◐ 공북문(拱北門)은? ◑ 공북문(拱北門)은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와 진주지도에 북쪽으로 나 있는 문입니다. 공북문의 공(拱)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고, 북(北)은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합니다. 따라서 공북문은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경의 뜻을 표한다"는 의미를 가진 문입니다. 그리고 공북문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진주성의 실질적인 정문이며 출입문으로 도청(道廳) 격인 관촬사영과 경상도 우병영이 소재했던 진주성의 주된 문으로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고유하던 자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시민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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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주 촉 석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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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 석 루 (矗石樓)는 ? ◑ 진주 촉석루는 진주성의 남쪽 벼랑 위에 장엄하게 우뚝솟은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합니다. 고려 고종 28년(1214)에 김지대(金之垈)가 창건한 후 여러차례 고쳐 지었는데 촉석루라는 이름은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은 까닭'에 누(樓)의 이름을 촉석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촉석루는 1950년 6 .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국보 제276호로 지정되었지만 전쟁때 불탄 것을 진주 시민들이 진주고적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옛 모습을 되찾았으며, 촉석루 편판 중 북쪽의 것은 영조 때의 명필 송하 조윤형이 썼으며, 남쪽문은 유당 정현복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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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에서 바라본 천수교 방향 풍경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건너편 유등축제 행사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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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강의 "의 암"이 내려다 보입니다.

 

◐ 의암(義巖)은? ◑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 의암은 임진왜란 때 논개(論介)가 순국한 바위를 말합니다. 조선 선조 26년(1593)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명의 민. 관. 군이 순절하자 논개가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했습니다. 이에 논개의 의열(義烈)을 기리고자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은 이 바위를 '의로운 바위' 즉 의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며, 인조 7년(1629년 정대륭이 이 바위의 벽면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危巖)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촉석루에서 유등축제 행사장으로 건거가는 현수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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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교를 건너가면서 촬영한 풍경인데 현수교가 흔들려서 걷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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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교를 건너온 다음 주 행사장에서 촬영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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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교를 건너온 다음 행사장에서 상류쪽 방향으로 이동하며 촬영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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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9.Por amarte asi (널 사랑해서) / Crist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