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권역별 관광]/대전광역시

♧[1]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탐방(2013.12.4 水)♧

반 석 2013. 12. 12. 04:00
♧[1]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탐방(2013.12.4 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인 옛 충남도청사 본관 (등록문화재 18호)에 자리한 "대전근현대사 전시관"은 20세기 초부터 최근까지 약 100년간 대전의 역사와 발전상, 원도심의 다양한 모습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는 물론, 건축, 디자인, 민속 등 여러분야의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으며, 그 외 옛 충남도청사 본관을 활용한 근대건축 투어 등 시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전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입니다.

▽ 정면에서 촬영한 옛 충남도청사의 위용

▽ 측면에서 촬영한 옛 충남도청사의 위용

 

004

▽ 대 전 연 표

 

006

 

007

 

008

 

009

 

010

근대도시 대전의 탄생은 철도와 함께했다. 경부선 철도부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일본인 이주자들에 의해 대전은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고 1905년의 경부선철도 개통과 1914년 호남선철도 개통이 이어지면서 일약 내륙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914년 "대전군"이 신설되었고 1917년 대전군 대전면이 '지정면(指定面)'이 되면서 신흥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전군은 지금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대전부로 승격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인 근대도시로 자리매김했다.

 

012

 

013

 

014

구한말 대전에서는 다양한 구국운동이 일어났다. 최초의 을미의병으로 평가받은 유성의병과 위정척시론의 선두에 섰던 연재 송병선과 그를 따르는 연재학파 등 대전의 구국운동은 그 어느 지역보다 뜨거웠다.

 

016

 

017

 

018

 

019

 

020

20세기 초 작은 한촌에 불과했던 대전은 철도부설과 함께 근대도시로 성장한다. 식민통치 이전부터 이주해온 일본인에 의해 도시가 개발되고 각종 도시 기반시설이 만드어 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제동 같은 전총마을이 파괴되기도 하였으며, 민족적 갚등 또한 증폭되었다. 또한 1932년 충남도청 이전으로 한층 도시의 모습을 갖춘 대전은 1935년 지금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대전부로 승격하였으며, 이를 전후로 하여 인구가 급증하는 한편 은행과 군부대 경찰서, 병원 등 주요 관공서가 신설되거나 대전으로 이주하면서 시가지는 한층 번화해져 지금의 중앙로가 개발되었다

 

022

 

023

 

024

 

025

 

026

식민지의 모순이 심화되는 1910년대 후반부터 대전에서는 치열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에 이르러 노동운동 또한 폭발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던 군시 제사공장 파업은 당시 대전의 공업 수준과 사회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또한 장기형을 선고받은 정치범을 수용했던 대전형무소는 식민지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028

 

029

 

030

 

031

 

032

 

033

 

034

 

035

 

036

 

037

                  ♧읽기와 쓰기♧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읽기와 쓰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어찌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칠 수 있겠는가? - 레프 톨스토이의 《톨스토이와 행복한 하루》중에서 - * 읽기와 쓰기. '교육'의 기본이자 궁극적 목표일 수 있습니다. '읽는 법'을 알아야 '쓰는 법'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어야 책을 잘 쓸 수 있고, 사람을 읽어야 그 사람에 대해 쓸 수 있습니다. 기쁨 안에 숨은 슬픔을, 슬픔 속의 슬픔을 읽을 줄 알아야, 읽기와 쓰기가 완성됩니다. - 2013년 12월 12일 고도원의 아침편지 옮김 -